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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건적의 형성과 배경

    홍건적은 14세기 중반 중국 원나라 말기에 발생한 농민 반란군입니다. 이들은 머리에 붉은 두건을 둘러 '홍건적'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홍두적(紅頭賊) 또는 홍적(紅賊)으로도 불렸습니다. 홍건적의 형성 배경에는 원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원나라는 몽골인, 색목인, 한인, 남인으로 계급을 나누어 통치했는데, 몽골인이 대부분의 권력을 장악하고 한인과 남인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또한 라마교를 숭배하는 원나라 황제와 라마교 승려들의 과도한 요구로 백성들의 불만이 커져갔습니다. 1348년부터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1351년에는 황하 개수 공사에 동원된 백련교도들이 봉기하면서 홍건적의 난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때 한산동이 미륵불이라 자칭하며 민심을 선동했고, 그의 부하 유복통이 각지를 노략질하며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당시 중국과 세계사의 흐름

    14세기 중반, 중국은 원나라의 통치 하에 있었지만 점차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다툼으로 통치력이 약화되었고, 천재지변과 전염병까지 겹치면서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었습니다. 이 시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원의 세력 약화로 인해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 아래 있었지만, 공민왕 즉위 이후 점차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14세기 중반 흑사병의 대유행으로 유럽과 아시아에 큰 혼란이 있었고, 이는 기존 질서의 붕괴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홍건적의 고려 침략

    홍건적은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1차 침입은 1359년(공민왕 8년) 12월에 일어났습니다. 모거경이 이끄는 4만여 명의 홍건적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의주, 정주, 인주, 철주의 4주를 함락시키고 서경(평양)을 점령했습니다. 고려군은 1360년 1월에 2만 명의 병력으로 서경 탈환을 시도했고, 치열한 전투 끝에 서경을 수복했습니다. 홍건적은 용강과 함종 방면으로 퇴각했다가 결국 압록강을 건너 도망갔습니다. 2차 침입은 1361년(공민왕 10년) 10월에 시작되었습니다. 반성, 사류, 관선생, 주원수 등이 이끄는 20만 명의 홍건적이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이들은 11월 11일에 절령(자비령) 방어선을 돌파하고 개경(개성)을 위협했습니다. 공민왕은 남쪽 복주(현재의 경상북도 안동)로 피난을 갔고, 홍건적은 개경을 함락시켰습니다. 고려는 전국에서 20만 명의 병력을 모아 반격을 준비했고, 1362년 1월에 개경을 포위했습니다. 이성계를 포함한 고려군 장수들의 활약으로 홍건적은 패퇴하여 압록강을 건너 요동으로 후퇴했습니다. 고려군은 계속 추격하여 여름에 수장인 파두반을 사로잡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주원장과 명나라의 건국

    주원장은 원래 홍건적의 일원이었지만, 점차 세력을 키워 독자적인 군대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그는 절강의 심만삼의 재력에 도움을 받아 서수휘, 진우량, 장사성 등의 세력을 격파했습니다. 주원장은 남경(난징)을 근거지로 삼아 다른 반란 세력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장강 유역의 화남을 통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368년, 그는 난징에서 황제로 즉위하여 명나라를 건국하고 연호를 홍무라 정했습니다. 홍무제(주원장)는 건국 직후 북벌을 개시하여 원 순제(토곤 티무르)를 북쪽으로 몰아냈고,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을 통일했습니다. 이로써 몽골족이 지배하던 원나라가 멸망하고 한족의 왕조인 명나라가 건국되었습니다.

    홍건적의 난이 미친 영향

    홍건적의 난은 원나라의 멸망을 가속화하고 명나라 건국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중국에서 몽골 지배가 끝나고 한족 왕조가 부활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고려에 미친 영향도 상당했습니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고려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는 고려 왕조의 쇠퇴를 가속화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반면, 이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성계와 같은 새로운 군사 세력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원나라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가 붕괴되고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 질서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고려(후에 조선)와 일본 등 주변국들의 대외 관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홍건적의 난은 단순한 농민 반란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를 재편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중국 내부의 변화뿐만 아니라 고려를 비롯한 주변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14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역사적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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