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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2024년 12월 24일 개봉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하얼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푸른 뱀의 해라는 2025년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으로 부터 1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또 다시 을사년을 맞이하여, 영화 "하얼빈"은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와 울림을 주는 듯 합니다. 하얼빈 영화의 실제 역사적 배경과 영화적 미학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영화 '하얼빈' 개요
'하얼빈'은 우민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현빈, 박정민, 조우진 등 실력파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입니다. 1909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중심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첩보 액션 영화입니다.
개봉일: 2024년 12월 24일
상영 시간: 108분
감독: 우민호
주연: 현빈(안중근 역), 박정민(우덕순 역), 조우진(김상현 역)
제작/배급: 하이브미디어코프 / CJ ENM
국내 해외 관객 및 비평가 반응
'하얼빈'은 개봉 단 3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48만 명을 돌파했고 28일에는 관객수 200만을 앞두는 등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높은 평단의 평점과 높은 예매율 등과 아울러 감동적인 관객들의 후기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어떤 이는 안중근과 역사의 무게가 시종일관 너무 진지하고 압도적이다라는 후기도 있었고 완전히 반대로 안중근의 영웅적 면모보다는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 들었다고 하는 상반된 후기가 공존한다는 점입니다. 과연 여러 분은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국내 해외 관객들 후기
우선, 국내 관객들은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감격스러웠다"
"하얼빈을 보고 나니 더 열심히 살아야 할 목표가 생겼다"
"대한독립이라는 네 글자와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가 머리 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등의 관람평을 남기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단순한 영화 후기라기 보다는 인생 다짐 같은 관람평이 주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긴 여운을 주는 영화라는 반증이겠지요.
한편, 해외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하얼빈'은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뛰어난 영상미에 대한 관람평이 이어지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비평가들의 평가
"우민호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
"현빈의 안중근 연기, 그의 배우 인생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연기"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서사 구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 해외 영화 전문지 'S'
영화 관람 방법
하얼빈 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나요? 시청 방법을 문의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요즘은 워낙 다양한 경로로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 어떤 영화 (드라마)의 경우는 넷플릭스 디스니 플러스 쿠팡 플리이 등 특정 플랫폼에서만 가입자에 한 해 볼 수 있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현재 '하얼빈'은 전국의 주요 영화관에서 상영 중입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에서 쉽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IMAX 포맷으로도 제작되어 더욱 웅장한 화면으로 즐기실 수 있습니다. 몽골 홉스골 호수를 배경으로 꽁꽁 언 빙판을 사력을 다해 걸어가는 안중근의 모습 등 압도적인 영상미 속에서 깊은 울림을 느끼고자 하신다면 고화질 영상 포맷을 추천드립니다.
향후 OTT 플랫폼 을 통한 하얼빈 다시 보기 방법
향후에는 아래와 같은 OTT 플랫폼에서도 다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2025년 상반기 예정
왓챠: 2025년 하반기 예정
티빙: 2025년 말 예정
정확한 OTT 공개 일정은 추후 발표될 예정이니 다시 보기로 시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주요 등장인물 및 배우 소개
안중근 (현빈 분)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독립운동가
주연 배우 현빈은 영화 출연진의 무대인사 인터뷰 등에서 "안중근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의 고뇌와 결단을 섬세하게 표현하려 노력했죠."라고 밝혔다.
우덕순 (박정민 분)
안중근의 동지이자 대한의군 작전참모
박정민 인터뷰: "우덕순이라는 인물의 강인함과 동시에 따뜻함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김상현 (조우진 분)
대한의군 통역관으로 활약하는 독립운동가
조우진 인터뷰: "김상현의 지적인 면모와 함께 그의 애국심을 균형있게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공부인 (전여빈 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하는 여성 독립운동가
전여빈 인터뷰: "당시 여성 독립운동가의 강인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다국적 로케이션과 미장센
영화 '하얼빈'은 우민호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홍경표 촬영감독의 탁월한 영상미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압도적인 스케일로 그려냈습니다.
'하얼빈'은 한국, 몽골, 라트비아 3개국에서 6개월에 걸쳐 촬영되었습니다. 각 로케이션은 1909년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몽골 홉스굴 호수: 얼어붙은 두만강을 상징적으로 표현. 안중근이 홀로 걸어가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꼽힙니다.
라트비아: 1909년 러시아의 분위기를 재현하며 독립운동가들과 일본군의 추격전을 담아냈습니다.
한국 광주: 신아산 전투 장면 촬영. 80년 만의 폭설이 극적 효과를 더했습니다.
탁월한 영상미와 기술적 특징
'하얼빈'은 한국 영화 최초로 전체 분량을 IMAX 포맷으로 제작했습니다5. ARRI ALEXA 65 카메라를 사용해 높은 해상도와 넓은 화각으로 세부적인 디테일을 정밀하게 포착했습니다
우민호 감독은 CG 사용을 최소화하고 실제 로케이션을 활용하여 당시의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내려 했습니다. 이는 영하 40도의 극한 추위 속에서 독립군들이 겪었던 고난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우민호 감독 인터뷰
"'하얼빈'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과 고뇌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그의 동지들이 겪었을 내적 갈등, 두려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던 그들의 용기를 현대의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죠."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등을 연출한 필모그라피를 갖고 있습니다. 감독은 "인간이 무너지는 모습을 숭고하게 담고 싶었다"며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습니다.
2025년 을사년과 '하얼빈'의 의미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정확히 120년이 되는 해이죠. 을사늑약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불평등 조약으로, 우리 민족에게 큰 아픔을 안겨준 사건이었습니다.
'하얼빈'의 개봉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갖습니다. 영화는 을사늑약 이후 4년,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을사늑약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저항이자,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수 있는가?"
라는 노벨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함을 하얼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국가의 독립과 자주성의 소중함
개인의 희생과 용기가 만들어내는 역사의 힘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
'하얼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오늘날의 안중근이 될 수 있는가?"
안중근의 의미는 꼭 목숨을 바친다기 보다, 우리 사회, 우리나라를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정의란 무엇이고 어떻게 지겨야 하는 지 돌아볼 기회를 주는 듯 합니다.
을사년을 맞아 '하얼빈'을 관람하는 것은 단순한 영화 감상을 넘어 역사적 성찰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며,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영화 '하얼빈'은 우리에게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하면서도,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 그리고 그 의지가 만들어내는 변화의 힘을 보여줍니다.
2025년 을사년, '하얼빈'과 함께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성찰하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를 희망하며.. 모두들 응원합니다~!
* 영화 하얼빈의 역사적 배경
하얼빈이라는 영화의 실제는 어떠했을까요?
그 역사적 배경과 사건을 간략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1898년은 러시아가 중동 철도를 건설하던 시기로 이 때 하얼빈 역사를 건립했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게 됩니다.
당시 하얼빈 상황
1900년 대 초 하얼비은 인구 약 5만 명의 작은 도시였습니다.
조선인이라고는 '고려거리'에 모여 살던 270명이 전부였습니다.
그 때만해도 하얼빈 역을 이용하는 승객은 수백 명에 불과했습니다.
사건 당일 상황
오전 9시 15분경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 역에 도착했습니다. 전 조선통감이었더 이토 히루부미는 러시아 재무장관과 회담을 나누려고 온 것이었습니다. 이토는 약 25분간 러시아 재무상 코콥초프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후 이토가 러시아 수비병을 사열하던 중, 일본인 환영객들 틈에 숨어 있던 안중근이 이토를 향해 총을 발사했습니다.
"코레아 우라!"
안중근은 총을 쏜 후 러시아어로 "코레아 우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가 외친 러시아말 "코리아 우라"는 다름아닌 "대한민국 만세"라는 뜻입니다.
당시 그곳엔 조선인은 없거나 적었고, 현장에 많이 있는 러시아인에게 명확히 들리도록 최후의 순간, 마지막 한 마디까지도 어떻게든 국제적인 여론을 움직이겠다는 일념으로 면밀히 계획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건 이후
사건 이후 안중근은 체포되어 1910년 3월 26일 처형되었습니다.
함께 거사에 참여했던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도 체포되어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현재의 하얼빈
인구가 600여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한인 동포는 3만여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하얼빈 역은 평소 5-6만 명, 명절에는 1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대규모 역이 되었습니다.
2014년 하얼빈역 구내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설립되었습니다.